대한전쟁
국권 회복을 위한 한반도 무력 투쟁사
✥유똥 인천 앞 중국 휴✥
유 = 유엔군 참전: 1950년 6.25 발발 이후, 북진하는 북한군에 맞서 유엔군이 대한민국 지원을 결정하며 본격 개입
똥 = 낙동강 방어선: 부산을 끝으로 남한이 밀리던 시기, 낙동강을 최후의 방어선으로 삼아 필사적으로 저지선 구축
인천 = 인천상륙작전: 1950년 9월, 맥아더 장군의 지휘 아래 감행된 대반전의 상륙작전. 전세 역전의 결정적 계기
앞 = 압록강: 유엔군과 국군은 북진을 계속해 압록강 인근까지 진출하며 통일 가능성이 언급
중국 = 중국군 개입: 중공군이 참전하며 대규모 반격 시작. 전쟁은 장기전, 교착상태로 전환
휴 = 휴전: 1951년부터 휴전 협상 개시, 1953년 정전협정으로 군사적 충돌 종료. 평화는 미완
유엔군 참전
북한의 선제 남침 직후, 미국을 중심으로 한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라 국제연합군이 한국전쟁에 개입. 미군뿐 아니라 영국·캐나다·터키 등 16개국이 군사 지원을 보냈다.
낙동강 방어선
1932년,한반도 남동부까지 밀려난 국군과 유엔군은 낙동강 일대를 최후의 방어선으로 설정. '다부동 전투' 등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으며, 국운이 걸린 마지막 저지선이었다.
인천상륙작전
맥아더 사령관의 지휘 아래, 1950년 9월 15일 인천 상륙에 성공. 병참선 차단과 서울 수복으로 전세는 단숨에 반전되며 북진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압록강 진격
북한군이 무너지고 국군·유엔군이 북쪽으로 진격+평양 점령 후 압록강 유역까지 진출. 사실상 전쟁 승리로 보였으나 중국의 개입으로 전황이 급변하였다.
중국군 개입
1950년 10월 말, 중국군이 대규모 병력을 투입해 한·미 연합군을 밀어냈고, 서울 재함락 등 전세 재역전. 휴전 이전까지 한반도 전역은 재전장화 상태가 되었다.
영릉가 전투
1951년부터 판문점에서 휴전협상 개시.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체결. 그러나 종전 아닌 정전이었고, 남북은 지금까지도 법적으로는 전쟁 상태이다.
작은 열쇳말

















